제1부: 통일된 베트남 지도
4월 초 베트남 수도 하노이 토라오(Thọ Lão) 길에 있는 작은 집에서 취재진은 올해 80세가 넘은 까오 쫑 티엠(Cao Trọng Thiềm) 화백을 만났다. 그는 1976년 베트남 공산당 기관지인 년전(Nhân Dân, 인민) 신문 특별호에 실린 통일된 베트남 지도를 그렸던 인물이었다. 이 지도는 해방 이후 첫 전국 총선거를 위해 제작되었다.
까오 쫑 티엠 화백은 방 한 켠에 놓인 장으로 천천히 걸어가 노란빛이 감도는 오래된 신문을 꺼냈다. 신문 위에는 통일된 베트남의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1976년 베트남 공산당 기관지인 년전(Nhân Dân, 인민) 신문 특별호에 실린 통일된 베트남 지도 (사진:년전 신문) |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까오 쫑 티엠 화백 부부는 거의 반세기 전 발행된 신문을 펼쳐 들고, ‘베트남 국가는 하나, 베트남 민족은 하나’라는 붉은 색 문구가 새겨진 지도를 다시 바라보았다.
“수많은 지도가 있었지만 왜 년전신문이 특별호에 실을 새 지도를 그려달라고 요청했을까요? 이 지도를 통해 분명히 하고자 한 것은 베트남의 영토와 주권의 공식성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까오 쫑 티엠 화백은 그 제안을 받고 놀라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임무를 받아들였다. 그는 세밀한 선 하나하나를 찍듯 붓질에 정성을 쏟으며, 쉽고 명확하면서도 ‘베트남 국가는 하나, 베트남 민족은 하나’라는 주제를 뚜렷이 드러내는 지도를 완성하고자 했다.
“완성까지 주어진 시간은 단 24시간뿐이었습니다. 밤낮없이 작업해야 했죠. 이 임무는 매우 중요했고, 반드시 ‘베트남 국가는 하나, 베트남 민족은 하나’라는 것을 표현해야 했습니다. 수많은 희생과 투쟁 끝에 우리가 쟁취한 오늘이니까요.”
|
올해 80세가 넘은 까오 쫑 티엠(Cao Trọng Thiềm) 화백(사진:년전 신문)
|
지도에는 각 지명이 정성스럽게 표기되었고, 국경선은 선명하게 그려졌다. 특히 쯔엉사(Trường Sa) 군도, 호앙사(Hoàng Sa) 군도, 토쭈(Thổ Chu) 섬은 베트남의 주권을 강조하기 위해 진하게 표시되었다.
“이 지도를 그렸을 때 저는 베트남이 통일된 민족임을 강하게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베트남 국민은 모두 하나이고, 주권 또한 완전한 하나입니다. 지도의 38개 성시, 육상과 해상의 국경선, 그리고 특히 쯔엉사 군도, 호앙사 군도, 토쭈 섬이 뚜렷하게 드러나도록 했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그 지도가 실린 신문은 까오 쫑 티엠 화백의 가족에 의해 소중히 보관되고 있다. 이는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사들과 국민들에 대한 화백의 감사의 마음을 담고 있기도 하다.
제2부: 베트남 국가는 하나, 베트남 민족은 하나
까오 쫑 티엠 화백뿐만 아니라 수많은 예술가들이 통일된 베트남 지도를 그릴 수 있었던 것은 1954년부터 1975년까지 21년간의 긴 항전 시기에 북부에서 남부까지, 떠이응우옌(Tây Nguyên) 고원에서 해안 평야까지 전국 각지에서 용감히 싸우고 희생한 수백만 명의 베트남 군인과 국민 덕분이었다. 그들 가운데는 이름과 무덤이 알려진 이들도 있었지만, 수많은 이들은 이름 없이 베트남의 강산과 대지에 몸을 묻었다.
그녀는 과거에 꼰다오(Côn Đảo), 푸꾸옥(Phú Quốc), 푸따이(Phú Tài) 등과 같은 적군의 혹독한 감옥에서 투옥되고 고문을 당했던 수천 명의 여성 정치범 중 한 명이었다. 당시 그들은 소금 한 톨, 밥 한 덩이를 나누어 먹으며 감옥을 혁명의 학교로 바꾸고, 수감자의 권리를 위해 끈질기게 싸워 나갔다.
동나이(Đồng Nai)성에 거주하는 쩐 티 호아(Trần Thị Hòa) 즉 바 호아(Ba Hòa) 여사(사진:hoilhpn.org.vn) |
호아 여사와 많은 동지들은 한 사람의 힘만으로 역사는 만들 수 없으나 집단의 단결과 조국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민족의 승리를 이끈 힘이었다고 말했다.
“어느덧 반세기가 훌쩍 지났습니다. 그 시절 우리는 한창 청춘의 나이에 있던 청년들이었습니다. 강철 같은 의지와 뜨거운 애국심을 품고, 자신을 잊은 채 앞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반드시 적군과 매국노를 물리치고 승리하겠다는 각오로 말입니다. 영웅이 되기 위해 싸운 것이 아닙니다. 조국을 위해 그리고 전장에서 먼저 쓰러진 동지들의 몫까지 바치기 위해 싸운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무리 처참해도 국민이 우리를 믿고 응원해준다면 싸울 수 있다는 것을 항상 떠올렸습니다. 정치범의 마음속 소망은 그 어떤 부귀영화도 조국의 깃발을 피로 물들인 자긍심과 바꿀 수 없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 신념은 살아 있는 전사들뿐만 아니라 순국한 열사들에게도 있었다. 1966년 전사 직전 빈자(Bình Giã) 연대의 세 명 전사가 돌아가며 쓴 ‘산 자에게 보내는 편지’는 바로 그 믿음을 보여주었다. 그들이 희생한 지 18년이 지난 1984년, 이 편지는 세 전사의 유해와 함께 빈즈엉성의 동나이(Đồng Nai)강 상류에서 발견되었다.
“만약 우리가 5년, 10년 뒤, 소중한 자유의 시대 후에 발견되었다면, 살아 있는 여러분께 이렇게 전하고 싶습니다. 영광스러운 그 시대 속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며 살아가 주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우리의 죽음을 온전히 의미 있게 만들어 주고 있음에, 우리는 깊은 감사의 마음을 보냅니다. 여러분이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는 모습은, 우리가 조국의 오늘을 위해, 아름다운 조국을 위해 우리 민족이 더욱 풍요롭고 행복하며, 우리 사회가 더욱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목숨 바쳐 싸웠던 그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1966년 전사 직전 빈자(Bình Giã) 연대의 세 명 전사가 돌아가며 쓴 ‘산 자에게 보내는 편지’ |
그들은, 살아남은 이들과 용감히 투쟁하고 희생한 이들은 모두 힘을 합쳐 베트남 민족 해방과 조국 수호의 역사 속에 하나의 위대한 영웅 서사시를 만들어냈다. 이는 지난 2025년 4월 21일, 호찌민시에서 열린 남부 지역 혁명 원로, 혁명 유공자, 정책 대상자와의 만남에서 또 럼 당 서기장이 강조한 바와 일맥상통한다.
“어떠한 문장도 위대한 베트남 민족, 베트남 국민, 그리고 두 차례 성스러운 민족 항쟁에서 싸운 ‘호찌민 군대’의 위대함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습니다. 어떠한 예술 작품도 ‘베트남 국가는 하나, 베트남 민족은 하나’라는 염원을 향한 베트남 국민과 국가의 거대한 의지와 힘을 완전히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전쟁의 불길 속에서도 베트남 민족은 승리자가 되었고, 세계 여러 나라의 민족 해방 투쟁에서 ‘양심과 삶의 목표’ 그리고 시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호찌민시에서 열린 남부 지역 혁명 원로, 혁명 유공자, 정책 대상자와의 만남에서 또 럼 당 서기장 |
오늘날 우리의 조국은 평화롭고 자유로운 나라가 되었다. 선열들의 피와 희생으로 이뤄낸 평화는 단순히 안정을 가져온 데 그치지 않고, 경제 발전·사회 진보·국가 번영을 위한 튼튼한 토대가 되었다.
제3부: 힘차게 도약하는 베트남
베트남이 막 통일된 해인 1975년, 한 해외 언론인은 베트남이 세계적인 위상을 확보하는 데 최소 100년이 걸릴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불과 50년 만에 베트남은 외교, 경제, 그리고 평화 발전 전선에서 눈부신 변화를 이루어 냈다.
베트남 사회의 눈부신 변모 (사진: VOV) |
알랭 토마 기자에 따르면, 50년 전 1975년 4월 30일에 베트남군 탱크가 통일궁 정문을 무너뜨린 순간은 수십 년간의 외세의 지배를 받던 시대를 끝맺고, 호찌민 주석의 영도 아래 1945년 독립을 선언한 한 베트남 민족의 역사적인 승리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알랭 토마 기자에게 있어 그 순간은 베트남 국민 스스로 정치적, 경제적 운명을 결정하게 된 분수령과 같았다.
“베트남은 작지만, 한때 불패의 신화로 여겨졌던 강대국들을 연이어 격파한 국가이자 아시아 경제 강국으로 도약하는 길에서 굳건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생생한 역사의 산증인입니다.”
프랑스 언론인 알랭 토마(Alain Thomas) 씨 (사진: 흐엉 짱/베트남 통신사) |
이와 더불어 알랭 토마 기자는 베트남 도시 지역 중산층의 눈부신 성장을 강조하며, 생활 수준의 뚜렷한 향상과 함께 국내 소비 수요의 폭발적인 증가, 그리고 부동산 시장의 급격한 팽창을 호평했다.
그는 특히 베트남이 전통적으로 교육을 중시해 온 점을 높이 평가하며, 학업 및 업무에서 보여주는 근면성실하고 규율 있는 태도가 베트남이 글로벌 경제 시대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비상할 수 있는 잠재력이라고 분석했다.
더불어 그는 지난 50년간 베트남의 견고한 정치‧사회적 안정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뚜렷한 변동이나 심각한 사회적 갈등 없이 유지되고 있는 안정적인 사회 분위기는 베트남이 격동의 기술 시대와 글로벌화 시대에서 흔들림 없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데 중요한 버팀목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베트남 전쟁의 ‘설계자’로 불렸던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 전 미국 국방장관의 아들인 크레이그 맥나마라(Craig McNamara) 씨 (사진: 미 하인/qdnd.vn) |
또한 알랭 토마 기자는 베트남 국민이 과거 외세의 강대국들을 숱하게 격파한 불굴의 민족이며, 그러한 정신이 여전히 공동체 정신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프랑스의 기자는 이러한 강인한 기질과 끈끈한 결속력, 그리고 강직한 정신이 앞으로 베트남 민족의 도약의 여정에서 다가올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5년 3월 초, 베트남 전쟁의 ‘설계자’로 불렸던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 전 미국 국방장관의 아들인 크레이그 맥나마라(Craig McNamara) 씨가 베트남을 방문했다.
쯔엉선(Trường Sơn) 국립묘지에서 방문한크레이그 맥나마라(Craig McNamara) 씨(사진: 인물 공급) |
베트남 군대의 창설, 전투, 승리의 역사를 담은 수십만 점의 유물, 기록,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베트남 군사 역사 박물관을 방문한 크레이그 맥나마라 씨는 이곳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날 그는 화해의 상징처럼 미국과 베트남 국기 배지 두 개를 양복 깃에 나란히 달아 눈길을 끌었다.
“방금 베트남 군사 역사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제 뇌리에 깊이 박히게 된 것은 평화라는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린 놓쳐버린 수많은 기회들이었습니다. 바로 그렇기에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 여러분의 선조와 우리 선조들이 겪었던 일들에 대해 논의하고 배우고자 합니다. 군사 역사 박물관 방문을 통해 깊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크레이그 맥나마라 씨는 1주일이 넘는 베트남 체류 기간 동안 6개 성시를 방문했다. 그는 다낭 해변, 맥나마라(McNamara) 라인, 따껀(Tà Cơn) 비행장, 홍프억(Hồng Phước) B1 기지, 이아드랑(Ia Đrăng) 등 아버지의 전쟁 시절 발자취가 서린 곳들을 두루 돌아보았다. 그는 또한 쯔엉선(Trường Sơn) 국립묘지에서 참배하고, 미라이(Mỹ Lai) 학살이 벌어진 선미(Sơn Mỹ) 마을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베트남 고위지대인 자라이에서 직접 전투에 참전했던 베트남 참전 용사 두 명을 만났다. 쯔엉선 국립묘지에 도착한 그는 수백 개의 묘지에 분향하고 1950년에 전사한 한 열사의 묘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크레이그 맥나마라 씨는 그 자리에서 북받치는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그 열사가 전사한 날은 바로 크레이그 맥나마라 씨가 세상에 첫 울음을 터뜨린 날이었기 때문이다.
“고(故) 보 응우옌 잡(Võ Nguyên Giáp) 장군이 생전 “당신들은 우리 문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우리 부친(로버트 맥나마라)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부친께서 베트남에 오셔서 베트남의 유구한 역사와 베트남인, 그리고 통일된 민족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 애석하기 그지없습니다. 저는어린 시절 내내 베트남에서 치러진 전쟁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았습니다. 이번 방문을 통해 양국 간의 미래를 건설하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크레이그 맥나마라 씨 및 자라이에서 직접 전투에 참전했던 베트남 참전 용사 |
크레이그 맥나마라 씨는 여생을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 극복 활동, 특히 그의 아버지가 미국 국방부 장관으로 8년간 재직하며 베트남에 살포 결정을 내렸던 고엽제‧다이옥신으로 인한 후유증 해결에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자신의 아버지가 주도적으로 조직하고 운영했던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자신의 변화 과정을 담은 회고록 『우리 아버지의 거짓말 - 베트남에서 오늘날까지의 진실과 가족 회고록』(영어 제목: Because Our Fathers Lied: A Memoir of Truth and Family, from Vietnam to Today) 베트남어판을 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당 도서는 그가 어떻게 열렬한 반전 운동가로 거듭났는지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25년 4월 30일은 베트남 국가 통일 50주년을 맞는 뜻깊은 날이다. 과거 1975년 4월 30일에 이룩한 승리는 수십 년에 걸친 독립 투쟁에 종지부를 찍었을 뿐만 아니라, 베트남이 국제사회에서 새롭게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한 역사적인 승리였다. 평화로 향하는 길은 험난하고 어려웠지만, 베트남 민족은 마침내 독립, 자유, 행복의 땅에 도달했다. 이제 베트남 민족은 하나로 굳게 단결하여, 과거의 소중한 정신적 유산을 바탕으로 더욱 강력하게 발전하고 새로운 목표를 향해 자신 있게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