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사표(萬世師表) 쭈반안(Chu Văn An) 선생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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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VWORLD) - 하노이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매년 많은 사람들이 존경심을 가지고 방문하는 장소가 있다하이즈엉(Hải Dương) 찌링(Chí Linh) 반안(Văn An) 봉황산에 위치한 쭈반안(Chu Văn An, 朱文安선생 사원으로베트남의 역사 속에서 훌륭한 도덕적인 모범이었던 쭈반안 선생을 모시는 곳이다.
만세사표(萬世師表) 쭈반안(Chu Văn An) 선생 사원 - ảnh 1

쭈반안 선생의 자는 영철(靈徹), 호는 초은(樵隱)이다. 본관은 타인담 (Thanh Đàm)현 꽝리엣(Quang Liệt)면 반(Văn) 마을로 오늘날의 하노이 타인찌 (Thanh Trì)현 타인리엣(Thanh Liệt)면에 해당한다. 진사에 급제했음에도 벼슬길에 나가지 아니하고 똘릭(Tô Lịch) 강변에 휜꿍(Huỳnh Cung)서당을 열어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후 진 명종(Trần Minh Tông, 陳明宗) 황제의 초청을 받아 국자감의 사업(斯業)과 태자(太子)의 교육을 담당하였으며 조정의 일을 거두기도 했다. 진 유종(Trần Dụ Tông, 陳裕宗) 황제 때 조정에 혼란하자 쭈반안 선생은 치국안민을 위한 제안을 여러 차례 올렸고 7명의 간신을 참수할 것을 요청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이 일로 쭈반안 선생은 벼슬을 내려놓고 봉황산에 은거하며 제자 교육, 서책 저술, 주민 진료에 여생을 바쳤다. 생을 마감한 이후에는 진 예종(Trần Nghệ Tông, 陳藝宗) 황제로부터 문정공(文貞公) 책봉을 받고 문묘에 모셔졌다.

쭈반안 선생이 은거하고 학생들을 양육했던 봉황산 유적지는 여러 왕조에 거쳐 수리를 거듭하였고 새 건축물도 많이 들어섰지만 전쟁으로 인해 거의 붕괴되었다. 1997년부터 하이즈엉(Hải Dương) 지방정부는 발굴 및 복원 사업을 실시하여 현재는 쭈반안 선생의 사원과 묘지, 그리고 교육의 장이었던 유광전(流光澱)이 전통적인 건축 양식으로 견고하게 복원되었다. 

만세사표(萬世師表) 쭈반안(Chu Văn An) 선생 사원 - ảnh 2

백 개의 계단을 오르면 쭈반안 선생 사원에 도착한다. 사원은 전제(前祭)와 후궁(後宮)으로 나뉘어진다. 사원 앞에는 세밀하게 조각된 위엄 넘치는 진(陳) 왕조의 두 마리 용 석상이 세워져 있다. 쭈반안 선생 묘지로 오르는 길은 모두 돌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난간도 설치되어 있다. 길 양쪽에는 웅장한 소나무 숲이 펼쳐져 있다. 봉황산 동쪽 봉우리에 위치한 쭈반안 선생 묘지에는 그윽한 향기가 가득하다. 묘지는 청옥 원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진(陳) 왕조 장식 문양으로 조각되어 있다. 묘지에서부터 서쪽으로 약 50미터 떨어진 것에는 옥정(玉井)이라는 우물이 있다. 설화에 따르면 쭈반안 선생의 별세 이후 일 년 동안 그의 제자들이 묘지를 지키면서 제사를 올리기 위해 우물을 만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옥정에 언제나 물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우물 둘레에는 1미터 정도 높이의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두 마리의 용과 해와 달이 조각되어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이 우물을 신성하다고 여겨 우물 속 물로 세수를 하곤 한다.

베트남의 대표적인 유학자이자 훌륭한 도덕적 모범인 쭈반안 선생의 업적은 베트남 민족의 역사에 잘 기록되어 있다. 매년 음력 정월 8일 유적지에서는 붓글씨 축제가 열리고, 음력 11월 26일에는 귀향 축제가 열린다. 이 축제들은 전 국민, 특히 교사와 학생들의 정신 생활에 있어서 아름다운 문화 행사로 자리잡고 있다. 쭈반안 선생 유적지는 단순히 스승 존경의 전통을 배우는 장소를 넘어서 전 국민이 찾아오는 매력적인 관광지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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